국민대학교 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시온의 소리] 신뢰 잃으면 교회도 탄핵 당할 수 있다 / 이의용(교양대학) 교수

국정농단을 조사하고 대통령을 탄핵하는 과정에서 우리 기독교는 큰 상처를 입었다. 사건의 근원인 최태민은 ‘목사’로, 대통령 권한대행은 ‘전도사’로 인식됐다. 가룟 유다를 들먹이며 버티던 안수집사가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자, 그 자리에 은퇴목사가 등장했고 친박 핵심인사와 목사 대 집사의 갈등 드라마를 연출했다. 법정에서 태극기로 물의를 일으킨 대통령 변호인은 수시로 ‘하느님’을 들먹였다. 탄핵반대 집회장에는 태극기와 함께 대형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까지 등장했다. 성경 말씀이 적힌 플래카드가 곳곳에 나부끼고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누가 봐도 이번 일은 ‘기독교 관련 사태’로 보인다. 그나마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하나님께 감사’로 이임사를 마쳐 다행이다. 

80%에 가까운 국민들이 탄핵에 찬성하고 검찰과 특검 수사로 30명이나 구속기소되고 대통령이 탄핵되는 위기상황이었지만 교회는 시대와 상황에 적절한 메시지를 제시하지 못했다. 교인들은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를 알고 싶었는데, 설교자들은 우리가 어느 편을 들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정치인보다 더 정치적인 설교자들은 상황과 무관한 메시지로 핵심을 피하며 침묵했다. 어떤 설교자는 대통령 탄핵 시도가 사탄과 종북 세력의 책동이라고 외치며 탄핵반대 집회에 교인들을 대거 동원하기도 했다. 

동일한 상황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설교자들의 인식에 교인들은 당혹스러워 했다. 젊은 세대가 특히 그랬던 것 같다. 옳고 그름의 단서를 찾고 싶은 젊은이들은 설교보다 종편방송 뉴스나 특검 발표를 기웃거렸다. 설교자 대신 헌법재판관에게서 불의를 준엄히 꾸짖던 이사야의 모습을 찾아야 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조사에 따르면, 국민 절반이 한국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 일로 비신자들은 더 이상 소금과 빛의 역할을 교회에 기대하지 않을 것 같다. 

최근 ‘이상적인 그리스도인 상’에 대해 깊이 고민해볼 기회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영성(靈性) 지성(知性) 인성(人性) 그리고 사회성(社會性)이라는 키워드를 찾아냈다. 영성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지성은 진리와 허위를 분별하는 능력, 인성은 존경할 만한 품성, 사회성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을 말한다. 필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네 가지 덕목을 골고루 잘 갖춰야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네 가지 키워드는 의자의 네 다리와 같아 어느 하나가 짧을 때 넘어지기 쉽다. 다른 덕목은 좋은데 영성이 부족한 목회자, 인성이 부족한 공직자, 지성이 부족한 정치인, 사회성이 부족한 리더가 실족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번에 자기 교인들을 광장에 동원한 목회자나 그걸 거절하지 못한 교인들은 지성이 부족했다. 자기주장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판 이들은 영성이 부족했다. 죽창과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던 이들은 인성이 부족했다. 의견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적으로 여긴 이들은 사회성이 부족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은 어떤 역량과 성품을 지녀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현재 한국교회의 신앙교육은 ‘3행(行)’과 ‘3금(禁)’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3행이란 주일성수, 십일조 헌금, 전도이고 3금은 금주, 금연, 음행 금지이다. 한국교회는 ‘3+3’의 틀에 교인들을 가둔 채, 이들이 세상에 나가 이질적인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어떤 일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신자들은 ‘3+3’이 신앙생활의 전부이고 신앙생활의 열매인 걸로 착각한다. ‘3+3’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예수님의 대강령은 훨씬 더 중요하다. ‘3+3’의 틀을 깨고 나와, 예수님의 대강령을 통해 일상에서 의의 열매, 선한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에 대통령 탄핵사태를 겪고 있고, 한국교회는 그 과정에서 너무도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한국교회가 더 이상 하나님과 국민의 마음에서 탄핵되지 않으려면 깊은 반성과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진리의 허리띠로 허리를 동이고 정의의 가슴막이로 가슴을 가리고 버티어 서십시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전할 차비를 하십시오.…”(엡 6:14∼17, 새번역)

이의용(국민대 교수)


원문보기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714691&code=23111413&cp=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