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Focus] 삼성, 선장 없으니 잘나간다?…하나만 알고 '셋'은 모르는 소리 / 백기복(경영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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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장 리더십'의 3가지 역할
"회장은 병석에 누워 있고 부회장은 구치소에 있는데 삼성전자는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회장이나 부회장이 없어도 되는 것 아닌가? 오히려 이들이 없어야 더 큰 성과를 내는 것 아닐까?"
이 질문에 답해달라는 사람이 많다. 주인이 분명해야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명제는 적은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설득력 있는 반론이었다. 회장 없는 삼성전자의 최대 성과는 이러한 반론을 무색하게 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회장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단견에 기인한다. 회장은 재무나 마케팅의 단기적 성과의 달성을 독려는 하지만 대부분 사장에게 위임한다. 성과보상방식도 제도화돼 있어 회장이 일일이 간섭하지 않아도 열심히 하게 돼 있다. 세계 수준의 회사에서는 회장이 없어도 '운영 관리'는 잘된다.
회장이 회사 경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크게 세 가지로 본다. 첫째로 회장은 단기적 성과보다는 장기적 성과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삼성전자의 올해 성과는 올해의 노력뿐 아니라 과거 수년 동안 누적된 전략적 의사결정의 결과다. 공장을 신설하고 중국 투자를 늘리며 애플, 구글 등 유수 기업들과 다양한 전략적 제휴를 수행한 결과가 올해의 성과를 낳은 것이다. 전문경영인도 이런 투자 결정을 할 수는 있지만 결과에 대해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는 위축되든가 머뭇거리다가 실기하는 경우가 많다. 회장의 두 번째 역할은 회사 자체를 사고파는 것이다. 이것은 평생 월급을 받으며 시키는 일만 해온 전문경영인으로서는 능력 밖의 일이다. 주인 없는 기업일수록 전략적 의사 결정에 약하다는 증거는 많다. 물론 미국 기업들은 전문경영인 CEO가 이사회를 설득해 인수·합병(M&A)도 하고 심지어 본업을 버리는 전략적 결정을 밀어붙이기도 한다. 잘되면 GE의 전 회장 잭 웰치처럼 영웅으로 떠오르고 잘못되면 그의 후임자 제프리 이멀트처럼 매정하게 잘린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러한 관행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소신 있는 전문경영인도 많지 않고, 우리 M&A 시장이 미국만큼 활성화돼 있지도 않다. 세 번째 회장의 역할은 기업의 가치를 수호하고 구현하는 것이다. 구글의 공동설립자 래리 페이지는 혁신가치 구현에 매진한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1등주의'와 '성과주의'의 상징이며 SK의 최태원 회장과 리바이스(Levi's)의 찰스 버그는 '합의(concensus)' 가치를 중요시한다. 회장은 기업가치의 핵(核)이므로 스스로 그 가치를 말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회장의 언행과 추구하는 기업가치가 일치하지 않을 때 투자자나 소비자들은 회장의 경영 능력에 대해서 의심하게 된다. 회장 승계는 그래서 민감한 것이다. 차기 회장이 과연 기업가치를 대변할 수 있는지,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워 지켜본다. 애플 CEO 팀 쿡이 스티브 잡스의 혁신성에 못 미치고, GE의 제프리 이멀트가 잭 웰치의 성과주의를 못 따라갔으며,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브 발머는 빌 게이츠의 시장지배 가치 구현에 한참 모자랐다. 첫째는 회장도 리더십 훈련을 정기적으로 받아야 한다. 리더십 훈련은 주로 팀장과 본부장들만 받는다. 둘째는 전문가들의 리더십 진단을 받고 끊임없이 성찰해야 하며, 셋째는 자신이 기업경영을 통해서 어떤 가치를 어떻게 구현하려 하는지를 우리 사회에 수시로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끝으로 평범한 생활로써 특별함이 드러나도록 할 줄 알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