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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청소년 역사강좌]제9강 ‘박정희시대의 국제관계와 외교정책’ / 홍성걸(행정)교수
[동아일보 2004-11-30 00:51]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한 18년을 이해하는 것은 엄청나게 큰 코끼리를 그리는 작업이다.” ‘2004 청소년 역사강좌’의 제9강으로 ‘박정희 시대의 국제관계와 외교정책’을 주제로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1층 강당에서 강연을 한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이는 뒷발만, 어떤 이는 꼬리만, 또 어떤 이는 코만 그리고서 “이것이 진짜 코끼리”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박정희 시대는 그 공과를 복합적이고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홍 교수는 “박정희는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국가안보가 필수 전제조건이라고 봤다”면서 “이를 위해 박정희의 외교정책은 대미 동맹관계를 활용해 ‘안보우산’을 확보하려는 실용적 경제외교에 집중됐다”고 말했다. 다음은 강연 요지.》


● 5·16 전후 국내외 상황

엄청난 생산력과 기술력을 가진 선진 산업국가 일본의 공산화를 막음으로써 공산주의 팽창을 저지하는 것이 당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핵심이었다. 한국은 일본의 안전보장을 위한 일종의 전초기지였다. 6·25전쟁 후 산업시설이 초토화된 한국은 국가예산의 60%를 미국의 원조에 의존했다. 그러나 1957년부터 미국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정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원조를 계속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원조 규모를 축소(1957년 3억8300만달러→1959년 2억2200만달러)하기 시작했다. 1961년 당시 한국의 실업률은 25%, 1인당 국민소득은 79달러 수준이었다.

이 상황에서 1961년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박정희는 ‘혁명공약’에서 “경제 재건을 통해 절대빈곤에서 탈출할 것”을 주장했다. 이후 군사정부 2년 7개월 동안 외교관계 수립국가는 23개국에서 76개국으로 늘었다. 서독 이탈리아 캐나다 프랑스 등에 차관교섭 사절을 파견해 외자 도입을 위한 경제외교를 강화했다.

● 베트남전 참전의 의미

미국의 원조가 줄자 박정희 군사정부는 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수행하기 위한 투자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미국이 베트남전에 참전할 경우 주한미군을 빼낼 가능성이 높아 안보 불안도 가중됐다. 박정희는 주한미군 철수를 막고 경제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베트남 파병을 고려했다.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1961년 11월 미국 방문 시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미국이 요청하면 파병할 용의가 있다”며 베트남 파병을 먼저 제안했다.

어떤 지도자라도 자국의 젊은이들을 사지(死地)로 내모는 것은 최후의 선택이다. 박정희는 파병으로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경제발전에 필요한 자본을 축적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파병으로 한국군 5000여 명이 전사하는 등 1만600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러나 참전 군인이 국내로 송금한 액수를 포함해 파병에 따른 경제적 이익은 총 10억3600만달러(1965∼72년)에 이르렀다. 파병 후 한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원조는 회복됐고 주한미군은 현상 유지됨으로써 세계 각국이 한국에 투자하기 위한 안정적 환경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 닉슨 독트린과 핵무기 개발 시도

미국 닉슨 대통령은 1969년 이른바 ‘닉슨 독트린’을 통해 ‘아시아 각국의 안보는 스스로 책임질 것’을 천명했다. 주한 미 7사단이 철수했다. 1968년 무장공비들이 청와대 습격을 시도하는(1·21사태) 등 북한의 군사적 도발도 급증했다. 미국의 안보공약이 신뢰를 상실했다고 판단한 박정희는 방위산업을 신장시키고 중화학공업정책을 추진하면서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하려 했다. 핵무기 개발 시도는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불안하게 하면 독자적으로 핵 개발을 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주한미군 철수를 막기 위한 다목적 카드였다.

이후 미국 지미 카터 대통령은 박정희 정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 철수를 노골적으로 진행했다. 그러나 북한 군사력이 당초 추정보다 훨씬 강화됐음을 위성사진 자료 분석을 통해 확인한 후 철군정책을 거둬들이는 쪽으로 기울었다. 결국 1979년 5월 카터-박정희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동맹관계가 재확인됨으로써 한국 경제발전을 위한 선행조건인 미국의 안보공약이 유지됐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홍성걸 교수는:

1982년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치경제학과 정보통신정책 등을 전공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을 지냈으며, 1996년부터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The Political Economy of Industrial Policy in East Asia: The Semiconductor Industry in Taiwan and South Korea’(1997년)와 공저인 ‘정보정책론’(나남·1997년)이 있다. 논문으로는 ‘한국 중화학공업화 과정의 정치경제학’(사회과학논평 제15호) 등이 있다.



▼제9강서 쏟아진 질문들▼


이날 제9강 강의가 끝난 뒤 베트남전 파병의 의미와 가치를 둘러싸고 뜨거운 질문들이 쏟아졌다. 참전 용사도 질문에 나섰다.


이화여자외국어고 2학년 이경환양(17)은 “안보불안 상태에서는 외자도입이나 투자유치가 어렵다고 강의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며 “그렇다면 지금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세계 각국이 한국과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협상을 벌이는 이유는 무엇인가”하고 물었다.


강사인 홍성걸 교수는 “국제사회가 동요하지 않고 한반도를 비교적 안정적 상태로 보는 것은 이런 북한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 표명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광중 3학년 이상백군(15)은 “베트남전 파병이 한국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왔다고 했는데 파병에 따른 경제효과를 당시 중동건설과 비교해 달라”고 주문했다.


홍 교수는 “수동식 펌프의 경우 처음엔 펌프질을 해도 물이 잘 올라오지 않지만 바가지로 물을 몇 번 퍼부으면 물이 잘 올라온다. 베트남 파병은 바가지로 붓는 물과 같았다”고 비유했다. 그는 “베트남 파병을 통해 한국은 처음으로 해외건설 경험을 쌓았고, 이후 미국의 도움을 받아 중동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1968년 청룡부대 장교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고 자신을 소개한 이선호씨(71·서울 동작구 대방동)는 “일각에서 파병 군인들을 ‘용병’으로 치부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정부는 고엽제 후유증 등으로 고생하는 4만여 명의 아픔은 돌보지 않은 채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의 보상에만 치중해 불공평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홍 교수는 “전 세계가 ‘용병’이라고 비난해도 우리는 파병 장병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면서 “파병 장병에 대한 보상이 미흡한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양 백마初6년 이지환군▼



27일 강연에도 어김없이 ‘그’가 있었다. 백마초등학교 6학년 이지환군(12·경기 고양시 마두동 백마마을·사진)은 늘 맨 앞줄에 앉아 여태껏 진행된 아홉 번의 강의를 빠짐없이 경청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군은 강연 때마다 초등학생답지 않은 날카로운 질문으로 청중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이군은 지난달 23일 강연에선 “일제강점기 때 중국이 광복군을 적극 지원했다고 책에서 읽었으며, 또 용산 전쟁기념관에서도 ‘중국이 광복군에 지원한 물품’이라며 군화 탈지면 의료기구 등이 전시돼 있다. 그런데 실제론 중국이 광복군에 대한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강의해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질문을 던져 강사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군은 “매일 아침 동아일보를 보는데 어느 날 ‘청소년 역사강좌’를 무료로 들을 수 있다는 기사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면서 “토요일 학교 수업이 끝나면 집에서 점심을 먹고 버스를 타고 일산에서 서울 광화문으로 오는 게 낙이 됐다”며 웃었다.


이군은 한의사인 아버지(39)가 사준 한국사에 관한 20권짜리 전집을 시간 날 때마다 읽으며 역사학자가 되기 위한 꿈을 키워가고 있다. 이군은 강의가 예정된 부분을 전집에서 찾아 미리 읽는가 하면, ‘이해를 돕는 책’으로 제시된 참고서적의 내용을 파악하고 오는 등 ‘예습’에도 열의를 보이고 있다.


‘역사(책)의 매력’에 대해 이군은 △이미 밝혀진 게 많지만 밝혀지지 않은 것이 더 많다는 점 △공부하면 할수록 ‘아, 이런 점도 있었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된다는 점 △수학책은 일일이 계산해야 하지만 역사책은 단번에 죽 읽을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이군은 “박정희 시대에 핵무기 개발을 하려고 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27일 강연에 이군과 함께 온 여동생 지연양(9)은 “심심할 때마다 역사책을 읽는 오빠가 부럽다”며 웃었다.


▼이번 주 토요 역사강좌 안내(제10강)▼


▽일시=12월 4일 오후 3시∼4시반

▽장소=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1층 강당

▽주제 및 강사=‘박정희 시대와 근대화’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한국 정치사)



▽제9강의 이해를 돕는 책


△국가와 혁명과 나(지구촌·박정희·1997년)

△한국경제정책 30년사 : 김정렴 회고록(중앙일보사·김정렴·1991년)

△1960년대의 정치사회 변동(백산서당·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1999년)

△박정희 체제 18년, 어떻게 볼 것인가(논문·계간 사상·김일영·1995년 겨울호)



■강좌에 관한 사항은 성신여대 동아시아연구소(02-920-7089)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수강료 없음.


■지금까지의 내용은 동아닷컴(www.donga.com)'2004 청소년 역사강좌' 코너에 실려 있습니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