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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배달의 민족 아닙니까… 사랑도 이웃에게 배달하세요 / 김봉진(디자인대학원 10)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TV를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봤을 법한 익숙한 문구, 바로 배달음식 전문 애플리케이션(앱) '배달의 민족' 광고문구다. 2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로 배달의민족 사무실에서 요즘 광고계와 배달 앱의 대세인 ‘㈜우아한 형제들’의 창업자 김봉진(38) 대표를 만났다. 작달막한 키에 생글생글 웃는 얼굴에서 우유 냄새가 풍겼다. 우유팩을 집어삼킬 듯한 포즈에 직원들의 박장대소가 터졌다.

그는 현재 ‘경영하는 디자이너’로 대한민국의 배달문화를 바꾸고 있다. 그 역시 12년 전엔 평범한 디자이너였다. 서울예대와 국민대 디자인대학원을 나온 김 대표는 2002년 NHN과 네오위즈, 이모션에서 실력 있는 디자이너로 인정받으며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때 첫 번째 창업을 결심하고 회사를 그만뒀다. 하지만 멈출 수 없는 끼와 열정만 믿고 시작한 가구사업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단련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책과 씨름을 했다.

2010년 형과 함께 무작정 두번째 사업을 시작했다. 때마침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스파트폰 열풍이 감돌던 시기였다.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김 대표는 "형제들이 많은 집안에서 배달 음식을 시킬 때 전화를 거는 이는 십중팔구는 막내"라면서 “대한민국의 막내들의 설움을 한칼에 날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인터넷 애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이라고 했다.

‘배달’이라는 이름은 홀로 사는 이웃 사람들에게 매일 우유 배달로 안부를 묻는 ‘365우유 안부 캠페인(본보 2014년 11월 15일자 보도)’에서 벤치마킹했다. 이 운동은 고독사를 방지하는 목적으로 서울 성동구 옥수중앙교회(호용한 목사)가 지난 1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펼쳐온 아름답고 훈훈한 기부문화의 대표적인 사례다.


‘배달의민족’ 철가방을 든 김봉진 대표(왼쪽 두 번째)가 직원들과 함께 우유팩을 들고 ‘365우유 안부 캠페인’의 소중함을 알리고 있다.

신용카드 보관 케이스(왼쪽)와 밥값 포스터.

 

‘365우유 안부 캠페인’에서 착안

 집안의 막내인 김 대표는 어릴 때 고향인 전남 완도를 떠나 광주로 이사해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네 살이던 어느 날 새벽, 할머니가 연탄불을 갈기 위해 동그란 아궁이를 열어놓고 연탄을 가지러 간 사이에 일이 터졌다. 새벽잠을 깬 어린 봉진이 방을 나오다가 그만 연탄불 위로 떨어진 것이었다.

“으악∼” 외마디 비명소리에 놀란 할머니가 손에 든 연탄을 집어던지고 손자를 끌어올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연탄불에 댄 두 발은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짓물러 엄금엉금 기어 다녔다. 당시 김 대표의 어머니 한용림(69·옥수중앙교회) 권사는 토템신앙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이웃 사람들과 친척들은 하나같이 막내아들이 불구가 될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신앙의 초보였지만 한 권사는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다.

김 대표가 전한 당시 어머니의 생생한 체험 내용은 이랬다. “어느 날 밤 꿈에 어머니가 예수님을 만나셨답니다. 예수님이 허리를 숙이고 제 발을 쓰다듬으셨답니다. 그런데 꿈을 깨니까 정말 꿈같은 일이 벌어졌더라고요. 보세요. 지금 제 발에 아무런 흔적도 없잖아요.”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로 이사 온 김 대표 가족은 문만 열면 하수구 냄새가 진동하는 다락방이 달린 조그마한 집에서 매우 가난하게 살았다. 할머니와 부모님은 아랫방에서, 4형제는 다리도 제대로 뻗을 수 없는 다락방에서 새우잠을 잤다.

김 대표의 꿈은 화가였다. 학교 통지표에는 늘 “봉진이는 미술 재능이 탁월하니까 화가로 키우면 좋겠습니다”는 담임선생의 손글씨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형이 3명이나 되고 형편이 넉넉지 못해 미술학원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가뜩이나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해 희망이 사라지자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한 권사가 아들의 속마음을 눈치 챈 때는 고 3때였다. 학원비 봉투를 건네받은 김 대표가 홍대 앞 미술학원을 찾았지만 받아주는 곳이 한 곳도 없었다. 다행히 실기 실력이 뛰어난 김 대표는 서울예대 실내디자인과에 입학했다.

 

세상을 좀 더 우아∼하게

 학창시절 자유로운 영혼으로 시시각각 방황하던 김 대표의 마음을 잡아준 곳은 바로 교회였다. 그는 독일에서 공부하고 2001년 부임한 호용한(57) 목사의 재개발 지역 도시빈민 사역에 감동을 받고 마음을 다잡았다. 특히 ‘365우유 안부 캠페인’은 김 대표의 인생관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이 일은 언젠가는 여러분들이 해야 합니다. 나는 여러분 중에 반드시 이 일을 할 사람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호 목사)” 그 열매는 10여년 뒤에 맺혔다. 두 번째 사업이 본격적인 이륙 단계에 접어든 2012년 12월 김 대표는 호 목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사님, 우유 배달 비용은 제가 내겠습니다.” 김 대표는 오래전 호 목사와 한 무언의 약속을 이렇게 지켰다. 우유 배달 지원사업을 한 지 2년 만에 250가구로 확대하는 데 일조했다.

회사 창립 4년 만에 김 대표가 먹여살리는 직원은 150명이 넘었다. 월간 이용자 250만명. 지난 3년 동안 누적 다운로드 수 1400만건, 월간 주문량은 400만건, 매일 13만건 이상의 주문이 이뤄지고 있다.

김 대표에게 올해는 생애 최고의 해가 될 것 같다. 상복이 터졌다. 독특한 포맷의 TV광고는 각종 광고상을 휩쓸었다. 첫째 딸 이름을 딴 ‘한나체’를 무료로 배포하며 디자인기업으로서도 가치를 높이고 있다. 지난 18일 ‘2014 청년기업인상’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또한 ‘한국광고대상’에서 통합미디어 부문과 인쇄 부문 등 2개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우아한형제들에겐 ‘우아해지기 위한 그들만의 문화’가 있다. 우선 가족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회사 만들기다. 그들은 추상적이거나 어려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버킷리스트도 다함께 만들어 공유하고 있다. 2011년 10월 우아한형제들이 3년 후 자신들의 회사 모습을 그려본 내용들이다.

‘금발의 미녀 외국인들과 함께 일하고 싶어요/ 자율출근제도 시행과 야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반바지, 미니스커트 입고 출근할 수 있는 회사/ 결혼도 시켜주는 회사/ 관료주의에 얽매이지 않는 회사….’

그들이 꿈꿨던 목표는 대부분 이뤄졌다. 김 대표는 마태복음 20장 1절(포도원의 품꾼)을 소개하며 사원과 그 가족들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회사는 직원과 배우자와 자녀, 부모 형제자매 생일도 일주일 전부터 챙긴다. 당일에는 무조건 오후 4시에 회사 문을 나가게 한다.

김 대표의 꿈은 세계시장에서 디자인 트렌드를 선도하는 회사를 만드는 것. 세상을 바꾸는 다자인 리더가 되는 것이다. “우아한형제들은 건전한 철학이 바탕이 된 정보기술을 활용하여 한 단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려 합니다. 세상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세상을 조금 더 ‘우아∼’하게 만들 수 있는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원문보기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2854430&code=23111112&cp=nv

 

출처 : 국민일보 | 2014-11-22 0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