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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칼럼]‘묻지 마 살인’ 앞에 우리 모두가 죄인 / 김병준(행정정책학부) 교수

미국과 캐나다 총기소유 비율, 별 차이 없으나 총기살인 큰 차이… 美 ‘구분’과 ‘차별’ 더 심한 탓 
승자독식 구도 심화하면서 필요할 때 기댈 곳 없어진 한국… 사회비 지출도 OECD 최하위권 
아동학대 노인학대 집단혐오가 일상이 된 두려움과 좌절, 분노의 흉기 어떻게 할 건가


어느 날 오후, 길에서 택시를 기다리다 50대쯤의 행인과 눈이 마주쳤다. 술에 많이 취했구나 생각하며 눈을 돌리는 순간, 큰소리가 들렸다. “야, 너 왜 똑바로 인사 안 해. 나 노무현 찍었는데….” 바로 멱살을 잡혔다.

간신히 빠져나와 택시를 탔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했다. 도대체 직접 대면한 적도 없는 사람을 향한, 또 아무 내용도 없는 저 분노와 공격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이 생각났다. 인구 대비 총기 소유 비율에서 미국과 캐나다는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매년 1만2000∼1만3000명이 총에 맞아 죽는 반면 캐나다에서의 총기 살인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까? 무어 감독은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슴으로 전해지는 답은 ‘구분’과 ‘차별’이다. 미국의 경우 성공한 자는 축복받은 삶을 산다. 반면 실패한 자는 병원도 제대로 못 가고 아이도 제대로 키울 수 없는 고통의 삶을 산다. 자연히 세상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실패로 인한 좌절과 분노로 가득 차게 된다.

반면 캐나다는 최소한의 안락한 삶이 보장돼 있다. 없이 살아도 치료는 받을 수 있고,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도 있다. 두려움, 그리고 좌절과 분노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떤가? ‘구분’과 ‘차별’이 분명하다. 승자독식(勝者獨食)의 구도가 심화되는 가운데,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비 지출은 국내총생산의 10% 남짓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반이 안 되는 수준으로 순위 또한 최하위다.

가족이나 친구가 도움이 되면 좋으련만, 이 또한 글쎄다. 유럽 국가들의 경우 필요할 때 기댈 사람이 있다고 믿는 사람의 비율이 90%를 오르내린다. 이에 비해 우리는 72%, 이 역시 OECD 국가 중 꼴찌다. 유교적 전통을 가진 국가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세상은 각박하다.

여기에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금수저 흙수저’… 세상이 온통 힘 있는 자들의 판인 것 같다. 심지어 정규직이 비정규직 몫을 빼앗아 가는가 하면 자식에게 일자리를 물려주는 고용 세습 이야기도 나온다. 공정과 형평이 먼저 이야기돼야 할 노동계조차 그렇지 못하다는 뜻이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는 두려움부터 가르치고 배운다. “공부 못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출세 못하면 죽는 거야.” 다 커서나 한창 일을 할 때도, 심지어 은퇴를 한 다음에도 마찬가지, 세상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것 못하면 끝장이야.” “밀리면 죽어.”

적지 않은 사람에게 두려움은 현실이 된다. 즉, 지고 떨어지고 실패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좌절한다. 자살률 세계 최고라는 게 무슨 뜻이겠나. 좌절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뜻이다. 분노는 좌절의 또 다른 얼굴, 분노하는 사람 또한 수없이 많다. “저들이 나를 죽인 거야.” 그 분노는 세상을 향한다.

‘강남 화장실 살인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 정신병을 앓는 청년의 돌출적 행위라고? 아니다.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이건 그 뒤에는 두려움과 좌절, 그리고 분노를 가르치고 유발하는 사회 환경이 있다. 신경정신의학회도 이 병을 앓는 환자들의 범죄율이 일반인보다 오히려 낮다고 했다. 이 병을 유일한 원인으로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어쩌다 있는 돌출적 사건은 더욱 아니다. 좌절과 분노는 오히려 우리 사회의 일상이 돼가고 있다. 빠르게 늘어나는 아동학대와 노인학대 보복운전 등이 다 이런 것 아니겠나. 층간소음이나 작은 접촉사고에도 칼부림이 나고,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을 집단혐오의 대상으로 삼아 갈기갈기 찢어놓기도 한다.

구조조정은 곧 시작될 것이고 경제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공정과 정의도 여전히 저 멀리 있는 듯하다. 두려움과 좌절 그리고 분노의 ‘흉기’가 우리 모두의, 또 이 나라의 어깨와 가슴을 찌르지 않을 것이라 말할 수 있겠나?

누가 이런 사회를 만들었나? 직접 이렇게 만든 죄, 또 그것을 방관한 죄, 우리 모두가 유죄다. 정신병으로 원인을 돌리는 것도, 누구의 잘못이라 손가락질하는 것도 책임 회피이자 비겁한 일이다.

이 억울한 죽음 앞에 우리 모두 고개를 숙이자. 그리고 이 잘못된 사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자. 그럼으로써 용서를 구하자.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

 

원문보기 : http://news.donga.com/3/all/20160526/78323172/1